2020년 1월 26일 산케이신문 기사

관리자
2023-07-15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영친왕비 이방자여사 기념사업회 ' 입니다.


2020년은 영친왕과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님의 성혼 100주년인 뜻깊은 해였습니다.

2019년은 타계하신지 30주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추모나 행사없이 지나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100주년을 맞아 꼭 뜻깊은 행사를 진행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뜻깊은 행사가 꼭 개최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알려드릴 소식은 2020년 1월 26일 일본 산케이 신문에 기재된 기사내용입니다.


산케이 신문 전 서울 지국장이자 객원논설위원인 구로다 가쓰히로 선생님께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먼저 기사 내용을 보겠습니다.



↓ ↓  확대사진입니다 ↓ ↓

 


보기시 편하시도록 일본 기사의 내용과 번역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からくに便り】今なぜ李方子(イ・バンジャ)妃なのか  2020.01.26 


 日本の雑誌『文芸春秋』に今年1月号から人気作家、林真理子さんの小説『李王家の縁談』が連載されている。今からちょうど100年前、日本の統治下にあった韓国の李王家に日本の皇族から嫁がれた李方子(イ・バンジャ)妃(1901~89年)の物語で、佐賀県の旧鍋島藩主の流れをくむ母・梨本宮伊都子(なしもとのみやいつこ)妃のことから始まっている。


 梨本宮家の娘・方子(まさこ)妃は昭和天皇の皇太子時代にお妃(きさき)候補のひとりだったことでも知られるが、結局、韓国の李王家最後の皇太子・李垠(イウン)殿下と結婚する。歴史的には日韓融和のためのいわゆる“政略結婚”だったといわれるが、小説では、方子妃が後の昭和天皇の皇太子妃としての可能性がなくなったことが李王家への縁談につながったという、興味深い設定になっている。


 今なぜ李方子妃なのか、林真理子さんの執筆動機は分からない。しかしひょっとして今年がその“日韓婚姻”から100年ということで思い立ったのかもしれない。ちなみに結婚は大正9(1920)年4月28日である。


 激動の日韓史を生き抜いた方子妃は戦後、夫・李垠殿下に先立たれた後も韓国に住み、障害者福祉に献身され韓国国民から尊敬された。亡くなられたのが平成元(1989)年4月30日。昭和天皇と同じ年の生まれだったが、くしくも同じ年に亡くなられた。


 昨年はその30年忌だったのに、日韓双方でさしたる行事もなく、ことさらその記憶をあらたにする機会はなかった。


 歴史における李方子妃の存在は、韓国ウオッチャーにとってはいつも気になってきた。日本人として日韓関係における“歴史的苦労”を彼女に背負わせてきたという申し訳ない感じがあり、あるいは彼女には日本女性としてのすごいガンバリの印象もまたあって、その存在は長く記憶されるべきだと思ってきた。


 そこで韓国ウオッチャーとしてこれまでささやかに書き残してもきた(『隣国への足跡』角川書店)が、本紙の外信コラム『ソウルからヨボセヨ』(昨年9月14日付)で「李方子女史作品展」を通じ記憶と追慕の努力を続けている篤志家、鄭夏根(チョン・ハグン)氏(68)を紹介したのもその一環だった。


 鄭氏は古美術商だが商売抜きで李方子妃の遺品や遺作を集め、彼女を記憶にとどめるためまったくの自費で展示会を開催してきた。彼女には障害者福祉の資金集めで制作された書画や焼き物などが多く残されている。展示会には日本からの参観者もあった。


 そこで彼の願いは「ご成婚100年」の今年、日本で作品展を開催することだが、これがなかなかうまくいかない。


 筆者もお手伝いさせてもらっているが、このところの日韓関係の悪化でみんな腰が重い。協力を打診しても「政治的リスク」などを理由に腰が引ける。「今年の日本はオリンピックで忙しい。オリンピック後には何とかなるでしょう…」と慰めているのだが。


 それにしても「韓国の土となった方子妃」を顕彰し語り継ぐ組織が、いまだ日本にまったくないというのは実に寂しい。(ソウル駐在客員論説委員)


↓ ↓  기사 한글 번역입니다  ↓ ↓ 


 일본 잡지 『 문예 춘추 』에 올해 1월호부터 인기작가 하야시 마리코 씨의 소설 『 이왕가의 혼담 』이 연재되고 있다. 지금부터 100년 전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한국의 이왕가에 일본 황족으로 출가한 이방자 왕비(1901~89년)의 이야기로, 사가현 옛 나베시마 영주의 혈통을 잇는 어머니인 나시모토노미야 이츠코 왕비부터 시작되고 있다.


 나시모토노미야 가문의 딸 방자비는 쇼와천황의 황태자 시절 왕비 후보 중 한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한국의 이왕가 마지막 황태자 이은 전하와 결혼한다. 역사적으로 한일융화를 위한 이른바 ‘정략결혼‘이었다고 하지만, 소설에서는 방자비가 훗날 쇼와천황의 황태자비로서의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 이왕가에 대한 혼담으로 이어졌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되어있다.


 지금 왜 이방자비인지 하야시 마리코씨의 집필 동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혹시 올해가 "한일혼인"으로부터 100년이라는 것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결혼은 다이쇼 9(1920년) 4월 28일이다.


 격동의 한일 역사를 살았던 방자비는 전쟁 후 남편 이은 전하를 떠나보낸 후에도 한국에 살면서 장애인 복지에 헌신해 한국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돌아가신 것이 헤이세이 평성 원년(1989년) 4월 30일, 쇼와 천황은 같은 해 태어났지만 공교롭게 같은 해에 사망하셨다.


 지난해는 돌아가신지 30주기였지만 한일 양국에서 별다른 행사도 없이 그 기억을 새롭게 하는 기회는 없었다.


 역사에서 이방자비의 존재는 한국 관찰자로서 늘 궁금했다. 일본인으로서 한일관계에 있어서 "역사적 고생"을 그녀에게 짊어지게 했다는 미안한 느낌이 들거나, 혹은 그녀에게서 일본 여성으로서의 대단한 노력의 인상 또한 있어, 그 존재는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한국 관찰자로서는 조촐하게 써서 남겨둔(『 한국에 대한 발자국 』카도 카와 서점)과 본보의 외신 칼럼 『 서울에서 여보세요 』(지난해 9월 14일자)에서 "이방자 여사 작품전"을 통해 기억과 추모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독지가 정하근씨(68)를 소개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정씨는 고미술상이지만 장사와 관계 없이 이방자비의 유품과 유작을 모으고, 그를 기억하기 위해 온전히 자비를 들여 전시회를 개최해 왔다. 그에게는 장애인 복지 자금 모금을 위해 제작된 서화와 도자기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전시회에는 일본에서 온 참관자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소원은 "성혼 100년" 올해 일본에서 작품전을 개최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필자도 도와주고 있지만 요즘 한일관계 악화로 다들 허리가 무겁다. 협력을 타진해도 "정치적 리스크"등을 이유로 주저할 수밖에 없다. 올해 일본은 올림픽 때문에 바쁘다. “올림픽 후에는 어떻게든 되겠지요”라고 위로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 흙이 된 방자비를 현창하고 구전하는 조직이 아직 일본에 없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나름 열심히 번역을 해보았는데요 ^^;;; 많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혹시 번역에 문제가 있거나 더 좋은 번역 혹은 의견 있으신 분들은 연락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래도 이렇게 언론에 기재가 되고 소설로도 연재가 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저희 말고는 그 어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합니다.


올해는 조금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이방자 여사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뜻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개최되길 바래 봅니다.


감사합니다.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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